현대의 경제 성장과 자본주의의 발달, 8⋅15 광복과 새로운 경제 질서 형성, 6⋅25 전쟁의 피해와 원조 경제, 경제 개발 계획의 추진과 고도 성장
8⋅15 광복은 우리 손으로 국가를 수립하고 일제 지배의 잔재 청산과 각종 개혁 실시 및 제도 정비 등을 수행할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남북 분단과 정치적 혼란으로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광복 직후에 주로 일본 자본으로 운영되던 많은 기업이 원료와 기술, 자본 부족의 어려움으로 공장의 문을 닫아야 했다. 더욱이 미군정하에서는 물가가 계속 치솟고, 심각한 생필품 부족 사태가 벌어져 경제가 어려워졌다. 또, 북한의 전기 공급 중단으로 남한의 경공업 중심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정부 수립 이후에 농지 개혁과 귀속 재산 불하가 시작되면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농지 개혁은 토지 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정부 수립 후 농지개혁법이 제정되면서 실시되었다. 유상 매수, 유상 분배를 원칙으로 이루어진 농지 개혁으로 인해 소작 제도가 폐지되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토지를 소유하는 원칙이 수립되어 일제 강점기 이래 높은 소작률로 고통을 받던 농민에게 희망을 주어 근대 농업 경제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미군정이 접수했던 귀속 재산을 민간에 불하하는 정책도 추진되었다. 이에 따라 1950년대 중반에 이르면 상당수의 기업이 민간에 넘어가 개인 소유 기업으로 바뀌어 산업 자본 형성에 기여하게 되었다.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은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도로, 철도 등 물류 교통 시설이 파괴되었고, 제조업도 생산 시설의 절반이 파괴될 정도였다. 전쟁 중에는 물론, 전후 복구 기간에도 미국은 많은 경제 원조를 제공했는데, 원조는 주로 식료품, 농업용품, 피복, 의료품 등 소비재와 면방직, 제당, 제분 공업의 원료에 집중되었다. 미국의 원조 물자로 식량이나 생활 필수품이 대량 공급되어 물자 부족이 해소되고, 소비재 공업도 성장하였다. 그러나 밀이나 면화 같은 농산물이 값싸게 들어와 당시 농촌 경제는 타격을 입었다. 1950년대 후반에 미국의 경제 원조가 차관으로 전환되면서 원조에 의존했던 한국 경제는 고충을 받았다. 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많은 중소 기업이 파산했으며, 서민의 생활은 어려움을 겪었다. 삼백 산업은 제분(밀가루), 제당(설탕), 면방직 산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소비재 산업이다. 4⋅19 혁명 이후 정부는 자립 경제 건설을 목표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경제 성장은 5⋅16 군사 정변 이후 새로 수립된 제1차(1962~1966), 제2차(1967~1971)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면서 이루어졌다. 이 기간에 경제 성장률이 매년 10% 안팎에 이를 정도로 고도 성장이 이루어지고, 광⋅공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등 경제 구조의 변화도 뚜렷해졌다. 이 시기의 경제 성장은 외국에서 도입한 차관과 국내의 풍부한 노동력을 결합시켜 섬유, 신발 등 경공업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정부는 수출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위해 저임금 정책을 펼쳤다. 1970년 무렵에는 갚아야 할 차관의 원금과 이자가 늘어나고 경공업 제품의 수출이 차츰 벽에 부딪히면서, 그 동안 이룩해 온 경제 성장은 위기를 맞아 정책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정부는 외국인의 직접 투자 유치, 기업에 대한 각종 특혜 제공, 중화학 공업화 정책의 추진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에 따라 마산, 이리(익산)에 수출 자유 지역이 만들어져 많은 외국인 기업이 들어섰다. 또, 울산, 포항, 창원, 여천(여수), 구미 등에 새로운 공업 단지를 조성하여 철강, 조선, 기계, 전자, 비철금속, 석유 화학 등 중화학 공업 등이 크게 발전하였다. 그 결과, 1970년대 중반부터 중화학 공업 제품의 비중은 전체 제조업 분야와 수출 상품 구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편, 정부는 경부 고속 국도를 비롯한 도로와 항만 등 사회 간접 시설을 확충하여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물류의 유통이 원활해져 산업의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또, 녹색 혁명의 기치 아래 간척 사업과 작물의 품종 개량도 실시하여 식량 생산이 늘어났다. 차관은 외국의 기업이나 금융 기관, 정부로부터 빌린 자금. 물자의 형태로도 제공된다. 녹색 혁명은 1950년대 이후 개발 도상국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식량 증산 정책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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